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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특별시

지역문화지수 평가에서 우수한 문화자원과 기반을 인정받은 도시 '창원'


6월 항쟁 (1987.6.10.)

  • 주소마산합포구 창동 133-1 (사거리 중앙 바닥)
  • 전화055-225-3631(자치행정과 민주성지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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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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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에는 학생들과 야당 정치인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특히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대통령 직선제’는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처음에는 직선제로 바꾸라는 여론을 무시했지만 국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어쩔 수 없이 헌법 개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87년 4월 13일에 갑자기 ‘호헌 선언’이 발표되었다. 사실상 이전의 헌법대로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겠다는 선언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헌법을 개정할 시간이 부족하고 정치인들이 서로 뜻을 모으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호언 철폐’와 ‘독재 타도’등을 외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들어갔다. 그해 초에 고문을 받다 숨진 박종철 사건과 시위 도중에 최루탄을 맞아 숨진 이한열 사건으로 인해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1987년 6월 10일 전국 곳곳에서 동시에 시작된 시위는 20일간 매일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차츰 일반 시민들의 수가 늘어나 국민 운동으로 발전해 갔다.

결국 전두환 정부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해 대통령 직접선거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구속되거나 연금된 정치 인사들의 석방 등을 내용으로 하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헌법이 개정되었고 국민들은 16년 만에 대통령을 자신의 손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시간별 재구성
1987년 1월 14일
- 서울대생 박종철군,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던 중 고문으로 사망

1987년 4월 13일
- 전두환 정권. 직선제 개헌 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으로 정부 이양 등 내용 담은 ‘4·13호헌 조치’ 발표

1987년 6월 9일
- 연세대학교 앞 시위 도중 이한열(21)씨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짐 (7월5일 사망)

1987년 6월 10일
- 6월 항쟁의 기폭제 된 법국민대회 개최
- 전국 22개 주요 도시에서 학생. 시민 약 24만명 참여

1987년 6월 29일
- 전두환 정권.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부 이양.
- 대통령선거법 개정.
- 김대중 사면복권 등 내용 담은 ‘6·29선언’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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