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제포는 웅천은 물론 창원의 방어와 마산포의 조운을 담당하여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되던 곳이다. 고려 공양왕 2년에 양광도와 전라도 및 경상도 등의 연해처에 모두 만호(만호(萬戶) 조선 시대에, 각 도(道)의 여러 진(鎭)에 배치한 종사품의 무관벼슬.)를 두었는데 이때 이미 별장(별장(別將)[역사]조선 시대에, 지방의 산성(山城)·나루·포구·보루(堡壘)·소도(小島) 따위의 수비를 맡아보던 종 9품 무관의 벼슬.)이 주둔해 있던 내이포에도 수군 만호진이 설치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조선 성종때에 이르러 선군(선군(船軍)은 기선-군(騎船軍)으로 조선전기에 왜군을 막기위하여 설치한 수군(水軍).)의 선상수어(선상수어(船上守禦)란 밖에서 쳐들어 오는 적을 배위의 선상에서 막음)가 무너지고 제포에 성지가 없어서 만호가 먼저 사로잡힐 것이라 하여 축성이 무산되었다. 그후 성종 15년(1484년) 사헌부 집의 조숙기의 계청(계청(啓請)은 임금에서 아뢰어 청함을 의미하는.주청(奏請)과 같은 뜻임. 다만 음악을 연주하 듯이 좋은 말로만 아뢰는 것이라면 계청은 논리적 정당성을 갖고 임금을 압박하여 청하는 것으로 사헌부와 사간원등 3사의 주청을 계청이라고 함.)으로 성종 16년(1485년) 우의정 홍웅을 순찰사로 남아 경상우도와 전라좌도 지역의 축성 예정지를 간심(조선 성종 때에 축성을 검토하였으나 축성이 되면 육지중심의 방어를 하게 되므로 바다에 나아가 배위에서 왜적을 적극적으로 막는 선상수어가 소홀해질 뿐 아니라 성이 함락되면 만호가 바로 잡히게 되므로 축성을 무산시킴,)하여 삼포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 22개처의 수군영진에 축성키로 하였는데 그해 3월에는 이미 제포에 축성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성종 17년(1486)에 완성되었다. 제포진성은 제덕동 안지개 마을의 낮은 야산 서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정상부로부터 능선을 따라 해안에 일기까지 축조하였는데 자연 대석으로 이중기단을 조성하고 동.서.북의 정방에 옹성형문지를 성벽의 요소 요소에는 곡성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깊이 5m내외, 폭 5~9m내외의 해자를 둘렀는데 총연장 1,377m, 폭 4.5m, 높이 2m 내외의 평산성(평산성(平山城)이란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 고구려의 평양성, 백제의 사비성이 이에 속한다.)이다. 이용 정보 관광지명 : 제포성지 지정별 : 기념물 제 184호 위 치 : 제덕동 830, 831번지 일대 규 격 : 둘레 1,377m, 높이 2m |
구간 | 둘레 1,377m, 높이 2m |
길이 | 기념물 제 1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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