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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특별시

지역문화지수 평가에서 우수한 문화자원과 기반을 인정받은 도시 '창원'


4.19 혁명 (1960.4.19.)

  • 주소마산합포구 중앙동 3가3-28
  • 전화055-225-3631(자치행정과 민주성지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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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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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1일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이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제2차 시위가 일어나고 전국적으로 시위가 격화되었다.

그리고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이 시국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 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을 당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이 4월 19일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 타도”를 외치며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자 이를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4월 25일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4월 26일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이 혁명의 결과로 이승만 독재정군이 붕괴되었으며,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6.15개헌)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시간별 재구성
1960년 4월 11일
- 오전 11시 : 3월 15일 행방불명된 김주열 시신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
- 오후 5시 : 시위시작, 남성동, 불종거리, 오동동 파출소 앞 등 시내 일원 시위 계속
- 오후 7시 : 도립마산병원 앞 삼만여명 운집. 마산시청, 마산경찰서, 창원군청 앞 시위 및 기물파괴
- 오후 8시 30분 : 마산경찰서장 짚차 전소, 경찰 발포로 2명 사망, 수십명 부상 및 체포 구금

1960년 4월 12일
- 오후 10시 ~ 오후 4시 30분 : 마산시내 8개 남녀고교생 시위 돌입, 마산시민 수만명 합류
- 오후 7시 : 시민 1만여명 경찰서 앞 집결 시위, 23시 해산

1960년 4월 18일
-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고려 대학생들 피습사건 발생

1960년 4월 19일
- 전국의 시민, 학생 총궐기
-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비상계엄령 선포, 수백명의 사망자 및 수천명의 부상자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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