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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제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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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이 묘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제말(諸沫) 장군의 묘다.
제말장군은 고성인으로 1567년 출생, 자는 성여(成汝)요, 호는 가계(柯溪)로 무과에 등제(登第)하여 선조 25년(1592년) 의병장으로 웅천, 정암, 김해, 현풍, 의령, 문경 등지에서 크게 공을 세워 선조 26년(1593년) 성주목사(星州牧使)에 제수(除授)되었고 성주 전투에서 왜적을 토벌하다 선조 26년(1593년) 장렬히 전사했다.
당시 바다에는 이순신(李舜臣), 내륙에는 곽재우(郭再祐), 제말(諸沫)이라 하였다. 장군을 날아다니듯 빠르다 하여 비장군(飛將軍)이라 일컬었으며 왜적도 장군을 두려워하여 싸우기를 피했다 한다.
현재 성주 충절사(忠節祠)와 고성 운곡서원(蕓谷書院)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제말장군은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총부수문장을 지낸 무장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 홍록을 비롯한 동지 67명과 함께 의병을 모집해 김해와 의령 등지에서 왜적을 무찌르는 전공을 세웠다. 의령 정암전투 후 조정에서 파견한 김성일과 함께 각처에 흩어져 싸우는 의병을 연결하는 일을 하면서 경북 성주까지 진출했으나 이미 성주성이 점령돼 탈환을 위해 앞장서서 싸우다 전사했다.
나라에서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제말장군과 조카 홍록에게 병조판서를 추서하고 이를 기리는 비석을 성주와 진주성에 세웠다.
정조 16년(1792)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고, 충장공(忠壯公)의 시호를 내려 쌍충사적(雙忠史蹟)에 기록하게 하였으며, 그의 조카 제홍록(弘綠)과 장군의 충의를 기리어 성주와 진주에 쌍충각(雙忠閣)을 세웠으며, 순조 12년(1812년)에 장군의 충의에 비해 미약함을 애석히 여겨 그 공이 천추에 빛나도록 충의공(忠毅公)이란 시호를 다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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